제목결혼은 부모를 떠나는 것2022-03-19 15:06
작성자 Level 10

성경은 부부가 한 몸이 되는 관계를 연합이라고 표현하는데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룬다는 말은 부부 두 사람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이 공동체는 다른 공동체와는 달리 하나의 육체를 이루는 것처럼 긴밀한 관계가 되는 공동체이다. 하나와 하나가 합하여 다른 차원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두 사람이 부부로 연합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두 사람이 각각 다 부모를 떠나는 것이다. 부모를 떠나는 것은 부모로부터의 단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연합을 위한 발돋움이다. 부부 두 사람 각자는 자신의 부모를 통해 세상에 오고 부모의 보호 아래 부모의 영향을 받으면서 인격이 자라고 형성되었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차원의 인격 공동체인 부부가 되기 위해 각자는 자신의 부모를 떠나야 한다.

부모를 떠난다고 하면 우리는 제일 먼저 주거 공간의 독립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떠남은 단지 공간적 독립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공간적 독립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부모를 떠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며 공간적으로는 한 지붕 아래에서 산다고 해도 부모를 떠나는 일을 이룰 수 있다. 전통적으로, 장자는 결혼한 후에도 부모와 같은 집에서 사는 가정들이 대부분이었다. 오늘날에도 현실적으로 결혼을 했지만 따로 주거 공간을 마련할 만한 경제적 여건이 되지 못해서 부모의 집에 같이 사는 부부도 있고 연로하신 부모를 모시기 위해 부모와 같이 사는 부부도 있다. 과거에는 남편의 부모와 같이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아내의 부모와 같이 사는 경우도 많이 늘어났다. 이런 모든 경우에 부모와 함께 산다고 해도 관계의 우선순위는 부부이어야 한다. 부모를 떠나는 문제의 핵심은 관계의 우선순위이다.

부부가 자신의 원가정 부모를 떠나는 일의 핵심은 관계의 우선순위를 재정립하는 것이다. 부모를 떠난다는 말은 관계의 우선순위가 부모로부터 배우자로 바뀌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결혼 전에는 가장 가까운 관계가 부모-자녀 관계이다. 그러나 결혼을 하면서 가장 가까운 관계는 부부관계가 된다. 부모-자녀 관계는 혈연적으로 일촌이고 형제 관계는 이촌이지만 부부는 서로 배우자가 됨으로서 모든 혈연관계를 초월하는 관계가 된다. 부부가 결혼한 후에 부모와 공간적으로 독립되어 다른 집, 더 나아가 다른 지역에 살게 되면 관계의 우선순위가 부모-자녀 관계로부터 부부관계로 바뀌는 일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지만 관계의 우선순위는 공간적 거리와는 다른 문제이다.

부모를 떠나는 문제에 있어서 부부 두 사람은 모두 각자의 원가정 부모를 떠나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남자가 부모를 떠나”( 2:24)라는 말 때문에 여자보다는 남자가 자신의 부모를 떠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두 사람이 모두 자신의 원가정 부모를 떠나야 한다. 과거 전통사회에서는 본가를 떠나지 못하는 남편들로 인해 속앓이 하는 아내들이 많았던 반면, 최근에는 친정을 떠나지 못하는 아내들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남편들이 많다. 두 사람이 모두 자신의 원가정 부모를 떠나지 못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두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그 일을 이루지 못하면 부부의 연합에 방해가 된다. 한쪽은 관계의 우선순위를 변경시키려고 해도 다른 한쪽이 원래의 우선순위를 변경시키지 못한다면 온전한 연합이 일어나기 어렵다.

그렇다면 부부 각자가 자신의 원가정 부모로부터 떠나서 독립한다는 말의 구체적인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는 누구나 태어나 성장하는 동안 여러 가지 면에서 부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각 사람은 성장하면서 차차 부모에게서 독립하여 독자적으로 인생을 살 수 있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 독립된 인격을 가진 인격체로서 독립된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면에서 독립을 이룰 필요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심리적인 독립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적인 독립이다.

먼저, 부모를 떠나는 것은 심리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는 상태를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심리적 의존상태를 벗어난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선택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사춘기를 거치면서 심리적 이유(離乳)를 연습한다. 하지만 아직 완전한 이유가 일어난 것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젖먹이 아기가 어느 시점에 가서는 어머니 젖을 떼야 하는 것처럼 장성한 자녀는 늦어도 결혼을 시점으로 완전한 심리적 이유를 단행해야 한다. 물론 결혼하여 살면서도 부모에게 조언이나 다른 도움을 요청할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들은 일시적인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고 심리적 의존과는 다르다.

인격의학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폴 투르니에(Paul Tournier)는 결혼한 후에도 여전히 부모에 대해 사춘기의 반항심을 가지고 있다면 심리적 의존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부모에 대한 반항심을 지니고 있으면 따로 떨어져 살면서도 그 반항심의 지배를 받으며 산다는 점에서 부모로부터 분리되지 않은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투르니에는 그런 상태는 배우자보다도 더 가깝게 영향을 주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므로 이러한 심리적 의존상태를 떨쳐버려야 자유로운 상태에서 배우자와의 연합을 이룰 수 있다고 조언한다.

부모로부터 떠난다는 것은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나 그 상처로 인해 생긴 분노의 감정을 배우자와의 관계에 연장시키지 않는 것도 포함한다. 우리는 성장하는 동안 부모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그 영향은 특별한 일이 없다면 평생 지속된다. 좋은 영향이라면 평생 그 영향을 소중히 여기며 간직해야 하겠지만 부정적인 영향일 경우에는 부모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일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부모에게 받은 상처를 떠나보내지 못한 사람은 그로 인한 분노나 쓴 뿌리가 개인의 의식 혹은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다가 부부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부 각 사람은 자신의 부모와의 관계에서 상처 혹은 부정적인 감정의 앙금이 남아있는지 점검하고 부모의 연약함과 허물을 이해하고 용서함으로써 부모의 부정적인 영향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것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부모를 떠난다는 말은 경제적인 독립을 의미한다. 형편에 따라 부모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때로 경제적 독립이 어려운 채로 결혼을 할 수 있지만 결혼한 부부는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원가정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길을 찾아야 마땅하다. 경제적인 의존은 부모에게서 독립하여 책임감 있고 자율적인 삶을 사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공간적인 독립이 어려워서 부모들과 같이 사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부부는 기본적으로 자신들만의 경제 계획을 세우고 경제적인 자율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경제적인 자율권을 가진다는 말은 경제적으로 책임감 있는 결정권을 가진다는 말이며 자신들의 삶을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책임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심리적인 독립과 경제적인 독립 외에도 원가정의 부모를 떠나는 것은 다른 여러 가지 일들을 포함한다. 예를 들면, 부모를 떠난다는 것은 자신의 원가정 부모의 방식을 배우자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부부 각자가 자신의 원가정의 방식을 배우자에게 강요한다면 두 사람은 항상 갈등의 소지를 안고 살 수밖에 없다. 부부는 각자의 원래 가정을 떠나 새로운 공동체가 되었다는 사실을 늘 상기해야 하고 남편과 아내 각자의 원가정의 방식이 달라서 긴장이 생길 때는 상대방의 방식을 비난하지 않으면서 두 사람이 모두 동의할 만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박진경/ Family Alive 연구소장,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교수)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일 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