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돕는 배필2022-10-18 11:42
작성자 Level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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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창세기 2장 18절에서 하나님은 아담을 먼저 만드시고 그가 혼자 존재하는 것이 좋지 않기 때문에 그를 위해 “돕는 배필”을 지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남자를 먼저 만드시고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로 여자를 만드셨다는 이러한 기록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아내는 남 편을 돕는 배필이 되어야 하지만 반대로 남편이 아내를 돕는 배필이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고 주장한다. 정말 남편은 아내를 돕는 배필이라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남자는 여자를 돕는 배필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남성 위주, 혹은 남성 우위의 가부장적인 관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돕는 배필이란 더 우위에 있거나 더 중요한 존재를 보조하는 사람이라고 이해한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서 종종 하나님을 ‘돕는 자’라고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시편 30장 10절에서 다윗은 “여호와여! 들으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를 돕는 자가 되소서.”라고 부르짖는다. 그러므로 ‘돕는 자’는 열등한 위치에 있는 자라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도울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 자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하와가 아담의 돕는 배필이라는 말을 하와가 아담보다 더 능력이 많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할까? 어떤 사람들은 여자가 남자보다 나중에 지어졌으므로 더 완전한 존재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 역시 올바른 해석이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우리는 아담은 돕는 배필이 필요한 존재이며 아담과 마찬가지로 하와 역시 돕는 배필이 필요한 존재라고 보아야 한다. 또한 하와가 아담을 도울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 존재로 창조된 것처럼 아담 역시 하와를 도울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존재로 창조되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다시 말해서 남편과 아내는 각각 도움이 필요한 존재이며 동시에 상대방을 도울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돕는 배필은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적인 관계로 이해하는 것이 마땅하며, 따라서 부부는 ‘서로 돕는 배필’로 지음을 받았다고 보아야 한다.

부부가 서로를 향해, 서로를 위한 돕는 배필이라고 할 때 남편과 아내는 각각 어떤 의미에서 서로에게 돕는 배필이 될까? 무엇보다 ‘돕는 배필’은 배우자에게 자신이 인격적 관계의 대상이라는 점을 깨닫게 해 주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배필”이라고 번역된 말의 히브리어 원어는 네게드(נֶגֶדֶ֫)인데 이 말은 ‘마주 보는 자’라는 뜻을 지닌다. 그러므로 ‘돕는 배필’이라는 말은 ‘마주 보면서 돕는 사람’이라는 뜻이며 서로 마주 보면서 인격적 관계를 맺기에 매우 적합한 대상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인격적 관계를 맺는 두 사람은 누군가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서지 않는다. 남편과 아내 두 사람이 진정으로 서로 돕는 배필이 되기 위해서는 둘 사이에 평등한 인격적 관계가 전제되어야 하며 서로를 인격적으로 존중해야 한다. 어떤 사람을 인격적으로 존중한다는 말은 그 사람의 존재를 귀중히 여긴다는 뜻이다. 역으로, 우리는 상대방이 우리에게 어떤 이익을 주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가치 있게 여기고 고마워할 수 있을 때 상대방을 존중할 수 있게 된다. 두 사람 사이에서 진정한 인격적 관계는 이처럼 서로가 상대방을 귀히 여기고 존중할 때 생길 수 있다.

인간이 맺는 관계를 I-Thou 관계와 I-it 관계로 분류했던 마르틴 부버는 인간으로서 우리가 상대방을 어떤 대상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주체적 존재로 인식할 때 상대방과 I-Thou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우리는 상대방을 자신의 삶 속에 받아들일 때 상대방과 I-Thou 관계, 즉 인격적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된다.

반면에, 상대방을 어떤 목적을 위한 대상으로 인식할 때 우리는 상대방과 진정한 인격적 관계를 맺지 못하게 된다. 부버에 의하면 I-Thou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은 상대방을 대할 때 자신의 전 존재로 대한다. 우리가 상대방을 우리의 전 존재로 대한다는 말은 우리의 마음을 다해 상대방과 인격적 관계를 맺는다는 말이며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진정으로 감사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상대방을 부분적으로 대하거나 평가의 대상으로 대할 때 I-Thou의 관계는 사라져 버리고 I-it의 관계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인간은 단독자로서는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관계적 존재이다. C.S. 루이스는 『4가지 사랑』이라는 책에서 인간은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순간, 자신의 외로움을 발견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누군가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다. 루이스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인간은 신체적으로, 정서적으로, 지적으로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남자가 혼자 있을 때 외로움을 느끼는 존재라면 여자도 역시 혼자 있을 때 외로움을 느끼는 존재이다. 그 이유는 바로 삼위일체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성부, 성자, 성령의 독립된 인격체로 인격적 교제를 나누시는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먼저 남자를 창조하셨지만 남자 홀로 존재하는 것은 보시기에 좋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의 의도가 완전히 구현되지 못한 미완성의 상태이었기에 여자를 만드심으로써 인간 창조를 완성하셨다. 이런 이유 때문에도 아내만 남편을 돕는 배필이 아니라 남편 역시 아내를 돕는 배필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아내는 남편에게 인격적 관계의 대상이 아니라 도구적 가치를 지닌 대상이 될 뿐이고 그것은 하나님이 의도하신 바가 아니다.

사실, 모든 인간에게 I-Thou 관계의 궁극적인 대상은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것은 I-Thou관계의 원천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I-Thou 관계의 기원은 세 분의 인격이 서로 I-Thou의 관계를 맺으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또한 그의 형상을 따라 창조한 인간과도 I-Thou 관계를 맺으신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그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인간이 서로 I- Thou 관계를 맺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남편과 아내 사이의 이러한 I-Thou 관계는 부모와 자녀 관계,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로 확장되어야 한다.

요컨대, 부부는 “서로” 돕는 배필로 창조되었으며, 서로 돕는 배필로서 남편과 아내는 일차적으로 자신의 배우자가 하나님의 형상을 잘 반영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하며 동시에 부부가 함께 협력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부부는 서로를 귀히 여기며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상대방과 I-Thou의 인격적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한다.


(박진경/Family Alive 연구소장,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교수)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일 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