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2022-02-26 19:44
작성자 Level 10

어린이라는 세계 - YES24 

2019년 즈음이었을까? 포털 사이트를 배회하다 우연히 일간지의 사설에 실린 김소영의 글을 만났다. 교육이란 어린이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지 고민하면서 우리가갈 길을 정해가는 것, 즉 교육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그 글을 참 인상깊게 읽었었다. 그러다가   2020년 말, <어린이라는 세계>라는 신간의 마지막 장에서 일년 전에 인상 깊게 읽었던 그 글을 다시 만났다. 우연히 만났다 헤어진 뒤 영영 소식을 알 길 없었던 인연을 다시 만난 것 마냥 어찌나 반갑던지!

아이들을 지도하는 글방 선생님으로서의 작가는 매일 일어나는 일상 속에서 아이들을 관찰하고 에피소드를 모아 글을 쓴다. 아이들은 작가의 현재와 과거를 반추하는 훌륭한 매개가 된다. 매일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기에 아이들은 작가가 더 좋은 사람, 더 좋은 어른이 되도록 만들어 주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작가는 더더욱 아이들의 사소한 행동이나 표정 하나하나를 놓칠 수가 없다. 그것은 애정이라는 모습으로 표출되고 결국은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관계가 되는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나 역시 그 선순환의 고리 어디 즈음에 끼어들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 책의 글 중, 가장 나의 마음에 와 닿는 글은 단연코 마지막에 실린 <길잡이>라는 글과 <사랑이라고 해도 될까>라는 글이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교사란 아이들을사랑으로가르쳐야 하는 사람이라고 여기지만 사실 내 가족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쉽지 않은 마당에 사랑이 어디 그리 함부로 혹은 당당히 누군가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이던가. 유료 수업에 사랑을 개입시킬 수 없다는 직업 윤리로 작가는 자신을 보호해보지만 훅 들어오는 아이들에 의해 번번히 무장해제 되고 만다. 학교 운동장에서 겨우 네 개 발견한 (비 오는 날 심으면 용이 되거나 하늘로 올라가는 나무로 알려져 있는) 행운의 콩 중, 통 크게 두 개나 주고 가는 아이, 책을 한 줄 낭독하더니 선생님을 올려다보며 같이 읽을래요?” 라며 달콤하게 제안하는 아이, 어금니를 뺀 경험을 이야기하며 마지막에 거의 다 됐을 때 엄청 떨리는 거, 선생님도 알죠? “라고 하는 아이.  “기억하세요?” 가 아니라 알죠?” 라고 하는 그 말에 심쿵하는 그 마음은 아이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면 가질 수 없는 반응이다. 아이들의 세계 속으로 초대받은 어른이 갖는 황홀감이 글의 곳곳에 묻어 있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어른 말고, 어린이들로부터 사랑받는어른이 쓴 글이라서 참 좋다.

사실 아이들과 관련된 글이 어린이는 사랑이다라는 명제로 쉽게 끝날 것 같은 이야기였다면 내가 이 책을 여러 권 사서 주변에 추천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린이라는 단어에는 유토피아 적인 느낌이 있다. 어린이는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는 현실에서 존재하는 실재인데, 비현실적인 유토피아 속의 인물로 가공되고 미화되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현실에서 마주하는 어린이와 괴리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희망과 절망 사이를 오고 가는 그 고단한 일을 어른도 하고 어린이도 한다. 그 피로함 속에서 우리는 냉소적이 되기도 하고 절망이라는 더 쉬운 방법을 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유혹을 과감히 넘어서게 만드는 것은 희망이 아니라 용기이다. 우리가 포기하지 말고 용기를 내서 어린이에게 작은 것이라도 좋은 것을 꼼꼼하게 챙겨서 넘겨주자고, 그것이 우리 어른들이 해야 할 몫이라고 저자는 독려한다. 세상을 실패한 곳, 절망이 가득한 곳이라고 선언하고 싶을 때마다 이 책에서 얻은 용기를 마음에 얹어본다. 그래서 나와 함께 이 세상을 공유하는 나의 동지들에게 자꾸 이 책을 사주게 된다. 함께 용기, 새로운 희망을 얻어보자고. 책을 덮고 나면 어린이라는 세계로 초대받을 수 있는 꽤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류수진 (서울 녹색병원 재활의학과장)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일 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