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자녀, 떠나보내야 할 선물2022-01-28 03:04
작성자 Level 10

자녀는 부모의 인생에 주어진 선물이다. 그런데 이 선물은 생명을 가진 살아 있는 선물이다. 살아 있는 선물은 그저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되고 돌보아야 하는 책임과 함께 받는 것이라는 점에서 다른 선물과 다르다. 뿐만 아니라 자녀는 부모에게 주어진 선물이기는 하지만 부모에게 소유권이 있는 선물이 아니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로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라 관계의 선물이며 책임이 부여된 선물이다. 또한 자녀는 그 존재 자체로 부모에게 기쁨을 주며 자녀와 맺게 되는 사랑의 관계는 부모의 삶을 풍요롭고 복되게 하는 선물임에 틀림없지만 자녀는 부모에게 갇혀 있어서는 안 되는 자유롭고 독립된 인격을 지닌 존재다.

부모의 돌보는 손길을 거쳐 자녀는 성장해야 하고 결국 부모로부터 독립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자녀양육은 곧 자녀를 독립시키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자녀를 위해 많은 수고를 하고도 자녀가 스스로의 인생을 살 수 있는 힘을 갖추어 주지 못한다면 그 수고는 사실 헛수고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자녀를 양육하는 일은 자녀가 독립된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돕는 일이다. 독수리도 새끼가 알에서 까면 바로 독립시킬 준비를 한다. 충분히 먹여주고 사랑해 준 다음에는 아직 날지 못하는 새끼를 부리로 물고 높은 곳으로 날아 올라가 떨어뜨린 다음 새끼가 땅에 떨어지기 직전에 낚아챈다. 그리고 다시 허공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 떨어뜨리기를 반복함으로써 새끼에게 나는 법을 터득하게 한다. 그렇게 해서 독수리 새끼는 어미를 떠나 스스로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자녀는 언젠가 부모의 곁을 떠나야 할 존재이다. 부모와 자녀라는 관계는 일생을 통해 지속되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 사실 아이는 나면서부터 혼자 살아갈 준비를 하며 이것저것을 배운다. 숟가락질도 배우고 말도 배우고 걷기도 배운다. 모두 독립적인 인생을 살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다. 엄마 품에 안겨 이리저리 구경을 하는 것도 세상을 배우는 중인 것이다. 그러다가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면서 이런저런 세상 이치, 학문의 이치도 배운다. 그런데 이 때 어떤 부모는 어떻게 해서든지 아이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 아이를 위해 시간표를 짜서 아이를 엄마가 만든 시간표를 따라 이리저리 돌린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여 계획을 짜는 대신 엄마가 대신 계획을 짜게 되면서 아이는 스스로 살아갈 방법을 배우기 위해 성장하기를 멈추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배워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 일은 그 일을 실제로 해 봄으로써 배운다. (For the things we have to learn before we can do them, we learn by doing them.)”는 말을 했다. 이 말은 사람은 어떤 일을 계속 시도하면서 실수를 통해 배운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자녀들이 실수하는 것이 두려워서 자녀를 위해 대신 생각해 주고, 대신 계획해 주는 일을 계속한다면 아이는 인생을 사는 법을 배울 수 없다. 아이가 좋은 성적을 받게 하기 위해 투터를 고용해서 아이 대신 좋은 답안을 써 주게 한다면 그렇게 해서 좋은 성적을 받은 아이들은 대학에 입학할 수 있지만 졸업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대학에 간 아이를 위해 다시 투터를 고용하여 아이가 제출해야 할 페이퍼를 대신 써 주게 하는 부모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과연 그 아이가 대학을 졸업한들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많은 가정에서 자녀를 양육할 때 마치 아이의 인생이 고등학교 3학년에 끝나는 것처럼 자녀를 키우고 있다. 그러나 아이의 진짜 인생은 고등학교 혹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자녀가 자신에게 주어진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은 학업을 마치고 부모의 곁을 떠나면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부모의 곁을 떠나야 할 나이가 되었을 때 스스로 인생을 계획하여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부모를 떠난다는 말은 단순히 거처를 달리하여 산다는 의미보다 심리적 의존 상태를 벗어난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물론 거처를 달리하여 사는 것이 심리적, 경제적 의존 상태를 벗어나게 하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결혼하여 분가한 후에도 여전히 부모에게 심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의존해서 사는 젊은 부부들의 이야기를 종종 접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심리적인 독립이다. 장성한 자녀가 부모에게 여전히 심리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면 그 자녀는 스스로의 삶을 살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다. 자녀의 의식 속에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확고히 심어주지 못했다면 부모는 자녀양육의 중요한 핵심을 완수하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녀가 독립하는 데 있어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심리적인 독립은 자녀에게 뿐 아니라 부모에게도 일어나야 한다. 자녀만 부모를 떠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 역시 자녀를 떠나보낼 수 있어야 한다. 자녀가 독립된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준비시켜야 할 뿐 아니라 장성한 자녀를 둔 부모들은 자녀가 장성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녀에게 계속해서 간섭하고 싶은 유혹을 물리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부모들은 자녀가 어릴 때부터 자녀에게 집착하지 않는 마음의 훈련을 해야 한다. 지나친 집착은 소유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진정한 사랑은 소유욕과 구별되어야 하고 부모는 자녀를 소유하고자 하는 본능적 욕구를 물리칠 수 있어야 한다.

자녀를 떠나보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자녀가 귀하기 때문에 더 많이 도와주고 싶고, 더 많은 일을 대신 해 주고 싶고, 더 많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해 주고 싶은 것은 자연스런 부모의 마음이다. 어떤 부모는 자녀들이 자기에게 심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의존할 때 부모로서의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지혜로운 부모는 자녀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떠나보낼 줄 아는 사람이다.

(박진경 / Family Alive연구소장,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교수)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일 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