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결혼은 계약이 아니라 언약2022-02-26 19:11
작성자 Level 10

2020년 대한민국에서 결혼한 사람들은 213,502쌍이고 이혼한 사람들은 106,500쌍이다. 비율로 계산한다면 2020년 한 해에 결혼한 사람들의 숫자 대비 이혼한 사람들의 숫자의 비율은 49.88%에 이른다. 그러니까 주변에서 결혼 소식을 2번 듣는 사이에 이혼 소식을 1번 듣는 비율인 셈이다. 

우리 부부는 지난 8월말에 남부 아프리카에 있는 에스와티니로 왔다. 이곳에 와서 놀란 점들 중 몇 가지는 남편과 함께 살고 있지 않은 여자들이 많다는 점과 결혼하지 않은 채로 남자친구와 여자친구로 함께 사는 커플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남편이 없는 여자들 중에는 남편과 사별한 경우도 있지만 별거 혹은 이혼한 경우도 많다. 따라서 엄마와 자녀로 이루어진 가정들이 많고 그런 가정의 엄마들 중에는 성관계를 하고 지내는 남자친구를 둔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쉽게 말하면 자유분방한 성관계와 이혼이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사람들이 직장을 찾아서 자신의 가정을 떠나 혼자 도시로 나와 사는 일이 많아지면서 새로운 곳에서 만난 이성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원래의 배우자와 자녀들을 돌보지 않는 일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현대에 와서 결혼에 대한 이해가 바뀌면서 배우자에 대해 행복한 감정을 가지지 못한다면 이혼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결과 사회 전체가 일생을 헌신하는 결혼에 대한 관념이 희박해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독일에서 공부하고 있는 막내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유럽에는 결혼하지 않은 채로 자녀를 낳고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고 한다. 젊은 사람들의 혼전 동거는 이미 흔한 일이 되었지만 자녀를 낳고 오랜 세월 함께 살면서도 혼인 신고를 하지 않은 채로 지내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 중에는 결혼식에 대한 부담 때문에 결혼식을 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지만 정말 중요한 이유는 누군가와 결혼하여 한평생 마음이 변하지 않고 살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많은 커플들이 이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결혼하지 않은 채로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 남편과 아내는 두 사람 사이의 사랑보다는 자녀양육이라는 공동의 책임과 가정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평생을 같이 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통적으로 대부분의 가정은 가부장적이었으며 아내는 남편을 보조하는 사람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 개인에 대한 존중이 강조되면서 사회적으로는 남녀평등의 분위기가 고조되었으며 이러한 사회적 변화는 부부관계에도 반영되게 되었다. 

개인에 대한 존중은 개인의 권리 뿐 아니라 감정도 존중하는 모습으로 발전하였으며 이에 따라 결혼에 대한 이해도 제도나 가정이라는 틀보다는 결혼의 당사자인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이해하게 되었으며 그 관계에서 남편과 아내의 권리와 감정이 똑같이 중요하게 여겨지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부부의 성에 대한 이해도 과거에는 자녀를 낳기 위한 방편 혹은 남성 중심의 성으로 이해되었으나 현대에 와서는 낭만적 사랑의 표현이 강조되고 남녀 모두의 감정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러나 개인주의적 문화가 만들어지면서 개인에 대한 존중이 지나쳐 사람들은 부부공동체나 가족공동체 안에서의 조화로운 관계보다 개인의 행복감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 결과, 감정적으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게 될 때 부부관계는 흔들리게 되고 현재의 배우자와 가족을 떠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과거에는 결혼을 제도로 이해했다면 현대에 와서 결혼을 남편과 아내 두 사람 사이의 관계로 이해하게 된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관계의 기초를 두 사람이 느끼는 감정에 두고 있다면 그 결혼은 닻이 없이 바다를 표류하는 배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감정은 매우 연약하고 변덕스러워서 결혼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하지 못한다. 

결혼을 안정적으로 지켜주는 힘은 감정이 아니라 관계에 대한 헌신, 즉 부부 두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서약이다. 성경은 배우자를 결혼언약을 맺은 짝이라고 표현한다(말 2:14). 성경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과 맺으시는 관계를 언약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상대방에 대한 변하지 않는 사랑의 약속을 뜻한다. 결혼은 바로 성경의 언약정신을 따르는 관계이다. 결혼관계에서 언약은 무조건적인 사랑과 전생애적 헌신이라는 두 가지 큰 특징을 가진다. 다시 말해서, 결혼은 상대방에 대한 조건 없는 사랑의 서약이며 영속적 관계를 맺는 행위이다. 우리말에도 부부가 평생을 함께 살 것을 다짐하는 약속을 뜻하는 “백년언약” 혹은 “백년가약”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결혼언약의 영속성을 표현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결혼을 두 사람이 평생을 함께 하기로 서약하는 것 혹은 언약을 맺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때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할 때도 배우자에게 헌신한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결혼을 언약관계로 이해하기보다 계약관계라고 이해한다. 계약관계를 맺는 두 사람은 서로 이해관계에 있어 대척점에 있는 사람들이므로 결혼을 계약관계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상대방을 한 팀의 구성원으로 이해하지 않고 각자가 자기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계약관계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사업상 두 사람이 계약을 맺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두 사람은 계약서를 매우 꼼꼼하고 신중하게 읽고 난 후에 서명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상대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이다. 계약관계에 있는 두 사람은 자신이 손해를 입고 있다고 생각하면 관계를 끝낸다. 

근대사회에 들어오면서 인류 사회는 사유재산제와 인간의 평등에 대한 의식 및 개인의 자유 등을 중요한 가치로 꼽게 되었고 이러한 가치들은 계약문화를 발전시켰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재산이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상대방과 계약관계를 맺는다. 다시 말해서, 계약관계에서는 두 사람이 각자 자기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게 되므로 운명공동체나 인격공동체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 계약의 정신이 결혼관계에 들어온 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계약 정신의 지배를 받는 결혼은 견고한 결속력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결혼은 언약관계에 대한 헌신이기 때문에 부부는 각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방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 계약의 정신은 상대방이 나에게 행복한 감정을 주지 않으면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하지만 언약의 정신은 상대방이 나에게 행복한 감정을 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관계를 파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감정이 결혼을 유지시켜주는 닻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결혼을 언약관계로 이해하고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희생적 사랑을 하는 부부는 사랑의 감정을 더 안정되게 유지할 수 있다.

결혼은 이처럼 부부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맺은 언약일 뿐 아니라 그 두 사람이 함께 하나님 앞에서 맺은 언약이기도 하다.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언약을 맺은 것에 대해 하나님이 증인이시기 때문에 그 언약은 더욱 견고하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연약함과 완악함으로 인해 때로 두 사람의 언약이 끝까지 지켜지지 못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마 19:8) 결혼언약을 맺은 두 사람은 근본적으로 “둘이 아니요 한 몸”(마 19:6)임을 기억해야 하며 둘 사이의 언약관계에 대한 헌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안정된 행복감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2022. 02. 25)

박진경 ( Family Alive 연구소장,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교수)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일 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