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진정한 유산 (True Heritage)2022-01-28 03:06
작성자 Level 10

일반적으로 유산은 부모가 죽을 때 자녀에게 남기고 가는 물질적인 재산을 말한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물질적인 재산을 많이 물려주기 위해 열심히 재산을 모으고 지키며 살아간다. 죽을 때까지 가질 수 있는 한, 더 많이 가지려 하지만, 결국 죽을 때는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므로 남은 것은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자녀들에게 물려지게 된다. 그러니까 그렇게 평생 더 많이 가지려고 애쓰는 것은 결국 자녀들에게 더 많이 남겨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녀에게 물질적인 유산만 물려주고 그 유산을 지킬 만한 힘을 키워주지 못한다면 그 재산을 지킬 수 없으니 그런 경우에는 사실상 물질적인 유산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물질적인 유산 때문에 형제 의가 상하는 일도 있고, 부유한 가정에서는 자녀들이 장성하여 결혼한 후에도 부모에게 의존하거나, 나이가 들어서도 연로하신 부모를 보살피고 섬기는 마음보다는 부모의 유산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생긴다. 이런 폐단들을 없애기 위해 기독교윤리실천의 일환으로 1990년대 후반에 유산 물려주지 않기 운동이 일어나고 재산을 자녀들보다는 사회에 환원하고 가지지 못한 사람들과 나누는 정신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자녀에게 큰 재산을 물려준다 해도 자녀가 그 재산을 지킨다고 보장할 수 없고, 많은 책을 물려준다 해도 그 책들을 읽으리라는 보장을 할 수 없다.”는 옛말은 물질적인 것들을 물려주는 것의 허망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녀들에게 물질적인 것들 외에 어떤 것을 남겨줄 수 있을까?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일과 관련해서 믿는 이들이 제일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믿음, 곧 신앙의 유산이다. 이제 한국도 개신교 선교 역사가 100년 이상이 되면서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하는 가정에서 자라고 부모님들의 신앙을 물려받는 자녀들이 많이 생겼고, 가정의 신앙적 전통을 귀중히 여기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신앙의 껍데기, 즉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다.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남겨주는 것이 단지 기독교의 종교적 형식뿐이라면, 그것은 자녀들에게 물질만 물려 줄 뿐 그 물질을 지킬 수 있는 정신을 길러주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물질 혹은 외형적인 것이 아닌 유산들은 모두 훌륭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물질 혹은 외형적이 아닌 유산을 크게 정신적인 유산과 영적인 유산으로 나눌 수 있는데 두 가지 모두 바람직한 유산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유산도 있다. 먼저 정신적인 유산부터 살펴보자면, 바람직한 정신적 유산의 예로는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 정신, 부지런하고 성실한 삶의 자세,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 돕는 마음, 검소한 삶의 자세,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바람직하지 못한 정신적 유산의 예로는 게으름, 불성실한 태도, 부도덕성, 부정직성, 소극적 태도, 사치하고 무분별한 경제생활 등을 들 수 있다. 영적인 유산도 마찬가지다. 건강하고 바른 영적 유산이 있는가 하면 왜곡된 영적 유산도 있다. 하나님의 뜻을 삶에서 실천하는 신앙은 전자에 해당하며 하나님의 뜻을 삶에서 실천하는 데는 관심이 없고 종교의 형식만 있는 신앙은 후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물질적인 유산은 많고 적음으로 그 가치를 따지지만 정신적 유산과 영적 유산의 가치는 유산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유산의 내용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데 바람직하지 못한 정신적 유산이나 왜곡된 영적 유산을 물려받은 자녀들은 결국 물질적 유산도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물질적인 유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신적인 유산이나 영적 유산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바람직한 정신적 유산과 건강하고 바른 영적 유산을 물려주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들로 인해 물질적 유산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들로 인해 자녀들이 가치 있는 인생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정신적 유산이나 영적인 유산은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에 물려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떤 면에서 부모는 자녀가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자녀에게 유산을 물려주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려서부터 부모가 자녀에게 해 주는 말들, 자녀에게 보여주는 얼굴 표정들, 삶과 신앙의 모습들 등은 부모가 세상에 있을 때든지 세상을 떠난 후든지 관계없이 자녀가 삶을 사는 동안 계속해서 영향을 주는 유산이다. 다시 말하면, 부모의 삶 전체가 자녀에게 유산이 되며 부모의 삶은 자녀에게 유산을 물려주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부모는 자녀에게 분노와 상처의 유산을 물려줄 수도 있고 사랑과 건강한 자존감의 유산을 물려줄 수도 있다. 물질적 유산은 많고 적음의 차이가 있는 것이지만 정신적인 유산과 영적인 유산은 유산의 질에서 차이가 나며 세월이 가도 없어지지 않는다. 아름답고 훌륭한 유산도 자녀들에게 계속해서 영향을 끼치지만 추하고 흉한 유산도 계속해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자녀는 부모의 곁을 떠나 부모와 독립적으로 인생을 살 수 있어야 하지만 아무도 자신이 자라온 가정, 즉 부모의 영향을 완전히 떠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자신의 삶에 있어서 가정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에게조차 가정은 그에게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그가 가정을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게끔 된 그의 이야기, 그 사람과 그 부모와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자라 온 원가정은 그 사람의 행복과 고통의 뿌리이며 요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녀들을 위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자녀들이 행복감을 가지고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인생을 살 수 있는 정신적 유산과 영적 유산을 물려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행복감이란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음으로써 얻어지는 일시적인 만족감이 아니라 사랑 받고 존중 받는 경험을 통해 형성된 건강한 자존감에 근거한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인생을 삶으로써 얻어지는 기쁨에 근거한 것이다.

자녀들은 많은 장난감이 있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장난감을 사주는 사랑이 있는 부모가 있어 행복한 것이고 장난감을 가지고 함께 놀아주는 부모가 있을 때 행복감을 느끼며 그 행복한 시간은 자녀에게 평생 남는 유산이 되는 것이다. 반면에, 많은 장난감을 사 주기는 하지만 부모가 그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바라 봐 주지 않고, 함께 놀아 주는 시간을 내지 않을 때 그 아픔이 평생 남는 유산이 된다.

매일 드리던 가정예배에 대한 기억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말씀과 동행하도록 이끌어주는 유산이 될 수도 있고 형식에 매인 종교인이 되게 하는 유산이 될 수도 있다. 집에 오시기만 하면 컴퓨터나 TV 앞에서 떠나지 않으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유산이 될 수도 있고 시간만 있으면 누워 주무시는 모습이 유산이 될 수도 있고 시간이 있는 대로 자녀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유산이 될 수도 있다. 부지런한 모습도 유산이 될 수 있고 게으른 모습도 유산이 될 수 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유산이 될 수도 있고 짜증 섞인 목소리나 언제나 화난 표정이 유산이 될 수도 있다.

성실하게 일하시는 모습이 유산이 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부를 부러워하면서 늘 불만 속에 지내는 모습이 유산이 될 수도 있다. 기회 있을 때마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전도하는 모습이 유산이 될 수도 있고 가난한 사람들을 비웃고 흉보는 모습이 유산이 될 수도 있다. 엄마와 아빠가 서로 존경하고 존중하는 모습이 유산이 될 수도 있고 비난하고 원망하는 모습이 유산이 될 수도 있다. 인생의 어려움에 분노하거나 절망하는 모습이 유산이 될 수도 있고 어려움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믿음도 유산이 될 수 있다. 진정한 유산은 손으로 잡을 수 있는 물질이 아니라 자녀들의 기억에 남는 것이며 자녀의 가슴에 새겨지는 것이다.

오늘날 국제적으로 대한민국의 경제적 위상이 대단히 높아져 있다. 그것은 우리 국민이 그동안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며 살아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특히 6.25 사변 이후, 우리 민족을 끌어 온 정신은 남보다 물질적으로 더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고 온 국민이 경제적으로 더 잘 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결과 오늘의 한국을 이루게 되었다. 지금은 지구 위 어디든 한국 물건이 가 있지 않은 곳이 없을 만큼 한국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한국은 최첨단 과학문명 기기들을 사용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 어떤 정신적 유산을 물려주고 있는 것일까?

이제 우리 국민의 관심이 물질을 뛰어 넘지 못한다면 우리는 물질적 풍요와 함께 도덕적 부패라는 유산을 우리의 다음 세대에 물려주게 될 것이다. 이미 우리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심지어 교회에서조차 그런 현실을 경험하고 있다. 재정적인 힘이 있는 교회들은 제일 먼저 남들보다 더 좋은 예배 환경을 만들고 더 좋은 음향기기들을 사용하고 다른 교회 못지않은 교회 묘지를 구입하고, 전망이 좋은 아름다운 교외에 수양관도 짓고, 힘이 없는 교회들은 그런 교회를 부러워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교회조차 물질이 최고의 관심이 되고 있는 사회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까? 교회에 속한 구성원들이 물질에 대한 탐욕을 버리지 못한다면 교회는 결국 사회를 이끌어 줄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리게 될 뿐 아니라 교회 자신이 도덕적 부패로 인해 무너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부터 돌이키는 민족적 각성, 교회적 각성은 결국 각 가정에서 시작되어야 하고, 이 일에 그리스도인 가정이 앞장 서야 할 것이다. 그러지 못한다면 왜곡된 영적인 유산과 바람직하지 못한 정신적 유산은 결국 우리 자녀의 인생과 자녀가 속한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본 글은 Otis Ledbetter와 Kurt Bruner가 공동으로 저술한 <하늘 유산>(미션월드)의 내용으로 부터 아이디어를 얻은 글임을 밝힙니다. <하늘 유산>에서 저자들은 유산의 종류를 영적 유산, 감성적 유산, 사회적 유산으로 나누고 각각은 견고하고 아름다운 모습일 수도 있고 빈약하고 추한 모습일 수 도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일 4:11).